[파리의 시선] ‘의대 정원 확대’ OECD 평균이라는 이름의 신기루

‘파리의 시선’은 프랑스 교민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전하는 기고의 장입니다.

*기고문은 개인의 의견이며, ‘에코프레소’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2017년 한국을 떠나, 학업을 위해서 아일랜드에 처음 정착했다.

무료한 생활의 반복 속, 갑작스러운 오른쪽 눈에 심한 고통은 부조리하게 내게 일어났다.

시력은 점차 떨어지고, 안압은 공기가 가득 찬 공처럼 높아졌었다.

급히 안과에 연락했지만, 한 달 뒤 방문 예약을 잡아주겠다는 대답만이 왔다.

다행스럽게도 며칠이 지나자, 고통과 시력은 나아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달 뒤 안과를 방문하여 진료받았다.

의사는 내 증상과 안구 상태를 점검하곤 ‘급성 녹내장’을 진단했다.

운이 나빴다면 시력 전체를 손실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만약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즉시, 응급실로 가는 게 좋겠지만, 그렇다고 생사가 갈리는 문제는 아니니, 응급실에 가도 빠르게 대처가 힘들 거 같다.”

 

현재 대한민국에 뜨거운 감자는 의대 증원 정책이 야기한 의료진의 파업이다.

(정부는) OECD 평균에 비교해 봐도 2/3밖에 안 되는 ‘의사 수’가 대리 수술 및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같은 사태의 가장 큰 문제로 보았다.

그리고 의과 대학 정원 확대는 이런 문제 해결에 필수 불가결하다 주장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의사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OECD 평균에 두 배를 넘는다. 급

성 심근경색증을 제외한 보건의료 질 또한 평균과 같거나 더 나은 모습이다.

당장 한국보다 천 명당 의사 수가 약 25% 더 많은 영국이나 프랑스도 2~3일(운이 좋다면), 길게는 2주에서 한 달 정도 기다려야 간단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오히려 지금 큰 문제 중 하나인 평균을 웃도는 간호대학 졸업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간호 전문인력 수를 일으킨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먼저 논의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의료진의 파업은 정당한 행위라 단순히 귀결되어선 안 된다.

특히, 전문직은 법률이 보호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대변해 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번 파업은 다른 직종의 파업과는 다르게 국민 개개인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즉, 의사가 되기 위해 낭독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들이 지켜야 하는 직업윤리뿐 아니라, 그들이 짊어질 사회적 책임 그 자체이기도 하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번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사람들의 의견은 얼만큼 반영되었는가?

위에 언급된 내용은 2022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행한 OECD 보건 통계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했다.

당연하게도 그 평균값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 정치권에선 각 국가의 의료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OECD 평균’이라는 이름 아래, 단장취의로 유럽 선진국들의 장점만을 부각하고, 현 대한민국 의료체제의 부족한 부분만을 강조하여 정책을 냈다.

또한, 한 개인의 윤리적 타락을 통해, 집단 전체의 문제라 일반화하는 중이다.

이번 정치적 논의에선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도, 그리고 그런 의료행위를 받을 국민도, 소외됐다.

나는 한국의 현 의료체계가 이상적이며, 다른 국가들을 보건 제도가 후진적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번 정책이 실현된다면 정치권은 10년 뒤 직접 영향을 받을 국민들에게 얼마나 진실하게 그 득실을 고지했는지! 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과는 얼마나 치열하게 토론했는지! 묻고 싶다. 지

지금 상황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OECD 평균’을 들며 급박하게 나온 결정을 내린 것 같다. 이 결정은 우리 국민 모두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OECD 평균이라는 신기루를 바라보며 항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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